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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블라블라

관악구 수해복구 봉사 다녀왔다. (feat. 폭우일기)

지난 8월 8일 수도권에 어마어마한 폭우가 쏟아져 강남/동작/관악 일대가 물에 잠기는 사고가 일어났다.
위의 세 지역뿐만 아니라 서울, 경기 지역에서 다발적으로 침수와 강이 범람되었고 이 폭우로 사상자도 발생했다.

집중호우 시 서울 일대는 침수가 종종 일어나기도 했지만 이번처럼 다수의 반지하세대 침수는 보기 드문 일이었다.

 

8월 8일 월요일
지인과 저녁 약속이 있어 만났을 때에는 비가 심하게 오진 않았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식당 창문으로 비가 새어 나오더니 결국엔 정전까지 되었다.
식당 사장님은 손님들에게 죄송하다며 식사값은 받지 않겠다고 하시며 드시고 계신 음식들은 편히 먹고 나가라고 하셨다.
지인과 나는 괜히 신이 났다.(그때까지만 해도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알지 못했다.)

식사를 마친 후 문을 나서는데 굵은 비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큰 도로의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려 했으나 길을 가는 도중에 물이 거의 무릎 아래까지 잠겨 버려서 걸어가는 건 불가능하다 생각해 근처의 마을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물은 계속 차오르고 차들이 도로를 지나갈 때마다 워터파크가 부럽지 않은 파도풀이 밀려왔고 그로 인해 정말 상체까지 물에 흠뻑 젖었다.

우여곡절 끝에 버스를 탔고 근처 지하철 역에 내렸을 때에는 도로가 물에 잠겨있지 않았다. 
그 동네의 하수구가 온갖 쓰레기로 인해 막혀있었던 것 같았다.
지하철을 타러 역사로 내려가서 탑승을 했는데 다들 뽀송뽀송한데 나만 물에 젖은 생쥐꼴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신림역에 내려 출구로 나갔는데...!

여기도 물에 잠겨있네? 

뽀송했던 사람들은 당황하며 출구 앞에 서있었지만 난 이미 젖은 몸, 거침없이 앞으로 돌진했다. 
걸으면서도 무서웠던 건 발아래에 뭐가 있을지 모른다는 거다.  
한 발짝 한 발짝 걸을 때마다 긴장했지만 다행히 자주 다니는 길이라 조금 안심했다. 
버스정류장까지도 물에 잠겨있었고 다들 흠뻑 젖은 채로 버스에 올라탔다. 사람들 모두 어안이 벙벙한 눈치였다.

버스로 한 정거장인 우리 집은 신림4동(신사동)이었고 우리 집은 그중에 고지대에 위치해 있었다. 
우리 집 아래의 반지하는 멀쩡했고 그날 집에서 들어가서 친구들과 다른 지역의 침수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일어나서야 어제 새벽에 있었던 일을 알게 되었다. 
너무 큰 충격이었고 우리 동네에서 사상자가 나왔다는 기사를 봤다. 
마음이 너무 안 좋고 기분이 이상했다. 
어잿밤 아무 생각 없이 잠든 내가 너무 천하태평인 거 같아서.

출근 후 뉴스 기사들을 살펴보니 관악뿐만 아니라 서울 한강 남쪽 일대가 전부 큰 피해를 입었고 사상자도 많아 충격이 쉽게 가시질 않았다.

내가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아서 피해복구 봉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며칠 뒤 신청했다.

 

 

8월 13일 토요일
아침 10시
신림동주민센터로 갔다. 
내가 일등으로 도착했고 그 뒤로 사람들이 들어왔다 대략 15명 정도 되는 20~40대의 청년분들이 모였고 개인으로 온 사람(나포함), 연인, 소모임에서 오신 분들.. 다양한 분들이었다.

10시 30분
주민센터에서 제공해 주는 것은 형광색 조끼와 목장갑, 장화는 수량이 3개뿐이었다.(나는 내 장화를 신고 갔다.)
아마도 이렇게 큰 피해는  처음인지라 물품이 구비되어 있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비닐봉지, 빗자루, 삽 등을 가지고 수해복구 현장으로 갔다.
센터에 접수된 피해 입은 가구 중 급한 가구들을 우선으로 지원을 갔고, 세대주와 연락이 되지 않을 때에는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쓰레기 더미를 정리했다. 
고무장갑 없이 목장갑으로 물에 젖은 쓰레기들을 손으로 옮겨 담았고 손에는 똥내가 진동했다.(씻어도 씻어도 하루종인 똥내가 났다.)
다들 말없이 묵묵하게 불평불만 없이 쓰레기 더미들을 정리했다.(민주시민 칭찬해ㅜ)

쓰레기를 정리하고 지원이 필요한 가구로 몇몇이 팀을 이루어 움직였다. 
침수 후 5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진흙탕물로 범벅된 집들이 많았고, 가구며 집기들이 물에 아직도 얕게 고인 물에 잠겨있는 집들도 있었다.
피해 현장에는 군인들이 봉사를 하고 있었는데 다들 제 일같이 땀을 뻘뻘 흘리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군인들이 큰 가구 가전을 꺼내면 봉사자들이 집안에 남아있는 집기를 옮기고 벽지를 떼거나 장판을 들어내기도 했고, 이미 장판을 걷어낸 집은 바닥청소를 도왔다. 

12시 50분쯤
여러 가구에 지원을 해준 뒤 다시 주민센터로 복귀했고, 자원봉사자들 중 나포함 3명을 제외한 분들은 오전 봉사만 하고 가셨다.
13시 50분까지 점심식사 및 쉬는 시간이 생겼고 근처의 식당에서 혼밥을 했다. (점심은 지원해 주지 않는다)
비까지 온다.

14시 
만남의 장소로 봉사자들이 모였는데 주민센터에서 온 3명은 구청에서 온 자원봉사 팀에 합류해서 같이 움직였다.
비는 계속 내렸고 어차피 땀으로 샤워를 했기에 우비를 입을 필요도 없었다. 우비가 더 더워...
구청에서 온 자원봉사팀은 그래도 체계가 있어 보였다. 주민센터는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불편했거든.
지원 나간 현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봉사자 분들과 짧은 대화도 나누었다.
관악구 분들도 계셨고 타 지역에서 오신 분들도 계셨다. 
다들 봉사에 진심이신 분들인가 보다 솔선수범해서 봉사를 하신다. 배운 것이 많았다.
나중에는 거리의 쓰레기 더미들을 정리했다.

17시 
원래 완료 시간이 17시였는데 비도 내리고 자봉들이 손쓸 수 없는 현장을 제외하곤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듯했다.
16시 40분 정도에 다 같이 모여 인사를 하고 해산했다. 
집기들을 주민센터에 반납하려고 들어갔더니 센터분들이 고생했다, 감사하다 인사하셨다.
다음 복구에도 도와주실 수 있으시면 도와달라고 하셨다. 
다음 피해가 더 없길 바라지만, 필요로 하면 또 봉사활동을 할 생각이다.

 

나의 수해복구 일기 끝! 
마무리는 열 일 한 내 장화! 고마워! (첨엔 부끄러웠지만 나중엔 위너로 만들어준 내 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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